1920년대 아름답고 재능 많은 신여성 김명순은 주목받는 인재였으리라. 비록 소실의 딸이기는 하나 평양 갑부를 아버지로 둔 그녀에게 세상은 거칠 것이 없었을 것. 여성의 배움에 인색했던 그 시절에 그녀는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로 성장했다.
그녀는 전통적인 결혼관에 대한 부정과 여성해방에 대한 성숙한 의식을 하고 있었다. 부모의 영향일까? 봉건적인 가부장적 제도에 환멸을 느끼게 된 이후 그녀의 삶과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녀는 전통적인 남녀 간의 모순적 관계를 극복하는 자유로운 연애를 갈망했다. 남과 여의 주체적인 관계만이 올바르다고 100년 전의 김명순은 생각했다.
이 시기에 『청춘』지의 현상 문예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의심의 소녀」는 전통적인 남녀관계에서 결혼으로 발생하는 비극적인 여성의 최후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여성의 딸만은 그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리라는 작가의 저항정신이 엿보인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집필된 소설이라 다소 읽기가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대 문학계의 기대주로 주목받은 한국 최초 여성 소설가의 첫 단편을 당시의 시대 상황을 음미하며 읽어보는 즐거움은 절대 놓치지 않기 바란다.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이자 최초로 시집을 낸 여성 시인이다. 필명은 탄실 또는 망양초로, 5개 국어를 구사한 번역가이면서 평론가, 극작가, 언론인, 영화배우, 연극배우로도 활동했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평양 갑부의 딸로 태어났다. 1902년 평양 남산현학교를 다녔고, 기독교학교인 평양 사창골 야소교학교를 다녔다. 1911년 서울에 있는 진명여학교를 다녔고, 동경에 유학해 공부하기도 했으며,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17년 잡지 『청춘』의 현상 소설에 응모한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19년 동경 유학 시절에 『창조』의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문필 활동을 전개했으며, 매일신보의 신문기자를 역임한 바 있고, 한때 영화에도 관여해 「꽃 장사」, 「노래하는 시절」 등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신문학 최초의 여류 문인으로서 여성해방을 부르짖은 선구자적 역할을 했으며, 여자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한 소설들을 많이 남겼다. 개인적인 생활의 고뇌와 사랑의 실패 등으로 인해 불우한 삶을 살았으나, 1925년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창작집 『생명의 과실』을 간행해 문단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명순은 소설 21편과 시 107편, 희곡 3편, 수필과 평론 18편, 번역 시, 소설 등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소설 「칠면조」, 「꿈 묻는 날 밤」, 「나는 사랑한다」, 「모르는 사람같이」 등이 있으며, 시로는 「동경」, 「언니 오시는 길」, 「석공의 노래」, 「시로 쓴 반생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