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유년시절은 있기 마련이다. 작가의 유년시절은 행복하지 않았다. 나라를 잃은 것도 서러운데 가난한 아버지마저 일찍 여의었다. 생계를 위해 재가한 어머니를 따라 의부살이를 한 작가는 유년시절의 추억을 다수의 작품으로 남겼다.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는 여전히 글을 쓸 만한 시간과 공간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환경에서 글을 썼다. 하지만 주변의 소소한 일상도 지나치지 않는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심리묘사로 탁월한 글솜씨를 발휘했다.
이 책에서는 작가의 유년시절만큼 순수하고 순진한 어린 화자가 주인공인 단편소설과 수필 작품들만 모아서 묶었다.
「월사금」은 1933년 일제의 민족말살을 위한 식민지교육이 극에 달하던 시절에 출간됐다. 함박꽃 같은 눈이 내리는 운동장에서 천진난만하게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 곁으로 나가고 싶은 어린 화자의 마음과 월사금에 대한 절박함을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다.
같은 해에 발표된 수필 「나의 유년시절」에서는 의부살이의 구박 속에서도 살구꽃, 앵두꽃, 복숭아꽃이 만개한 뒷산에서 어머니가 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는 듯하다.
역시 어린 화자가 등장하는 단편소설 「채전」은 의붓어머니의 괄시를 받으면서도 잠 한번 실컷 자보고 싶고, 바람이 불어 땅에 떨어진 설익은 과일이라도 실컷 먹어보고 싶다는 기대와 좋은 옷 입고 학교에 가고 싶은 어린 소녀의 순진한 일상이 잔잔하게 서술되고 있다.
번잡한 일상에 마음이 지친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본인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면서 아련한 추억에 잠길 수 있었으면, 그래서 잠시나마 위안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1907년 황해도 출신의 작가 강경애는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났다. 하지만 5세에 아버지를 잃고 재가한 어머니를 따라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이 시기에 겪었던 심리적, 경제적 곤란은 그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1년 단편소설 「파금」으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불우한 가정환경과 극한의 궁핍, 서울 중심의 중앙 문단과는 동떨어진 생활 등 강경애는 식민지 시기 다른 여성 작가와는 다른 환경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라면 자기 정체성을 세우는 성찰의 시간도, 글을 쓸 만한 시간과 공간도 가지지 못한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며 가정에서 글을 썼다.
국내외, 간도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사람들의 삶의 실상과 하층민들의 불우한 현실 등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알리는 것을 작가로서의 자신의 의무로 생각한 강경애는 자신의 소설작품에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시켰다.
나라를 잃은 식민지 시대에 아버지마저 잃고 가부장적 시대의 가난한 여성이라는 삼중고를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필체로 이를 고스란히 글로 표현해온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식민지 시대의 투쟁적 인간상을 그린 「인간문제」, 「파금」, 「지하촌」, 「소금」, 「어머니와 딸」 등이 있다.